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HOME < 계간지 < 사는 이야기

 

6호< 책이야기 > 슈거 블루스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16-12-30 15:30:08    조회: 2,157회    댓글: 0


 

<<< 책이야기 >>> 슈거 블루스

 

»»남효 (나모맘 / 편집위원)

 

  슈거 블루스 윌리엄 더프티 지음, 최광민 옮김, 북라인

 

  아주 저렴한 입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적이 있다.

  주로 곡물류를 섭취하고 과일류, 야채류는 지극히 적게 섭취했기 때문이다. 물론 곡물류는 현미, 콩 같은 잡곡류를 위주로 먹었다. 꼬득꼬득한 현미밥을 입안에서 오랫동안 씹어 삼키면, 순전히 상상력이 가미된 덕분이지만 내가 온 우주를 함께 먹었다는 자족감이 컸다.

 

  그런데 전혀 다른 섭생의 취향을 지닌 ‘화성인’을 만나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방식이 바뀌었다. 섭취량은 적지만 밥과 김치를 곧잘 먹는 큰 딸과 고기를 엄청 좋아하다가 결국 ‘아토피 어린이’가 되어버린 둘째, 된장국과 두부를 너무도 사랑하는 셋째까지. 가족을 구성하고 성원이 늘어나며 이질적인 성향들이 보태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섭생법은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밥순이다. 현미밥을 먹고 나면 ‘밥값’하고 싶어지고 백미밥을 먹고 나면 은근한 짜증이 밀려온다.

  아이들이 먹을 밥임을 강조하면서 100% 현미밥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약간의 현미가 섞인 밥을 먹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비록 그 녀석들이 할머니집의 100% 백미밥을 환호하는 순간을 빼고.


  설탕을 음식에 넣어 먹는 습관이 상식이 된‘ 이상한 나라’에서 살면서 오래전 펼쳤던 <슈거 블루스>를 읽으며 그동안 딸기잼처럼 찐득하고 끈끈하게 절여진 내 일상을 보게 되었다.


  탄수화물 중독과 칼로리-설탕을 은폐하는 지식


  어느 날 알게 된 탄수화물 중독증. 탄수화물은 곡물류에 있는 영양성분으로 우리들 일상인 밥의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탄수화물 중독증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는 테스트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건강 관련‘ 상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먹을것이 없을 시기에 곡물마저도 부족하던 시기에 그나마 유일한 먹을거리는 쌀이었을 텐데, 그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영양성분이 왜 지금에 와서야 말썽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 걸까. 책을 읽으며 탄수화물 중독증이 오히려 진실을 교란하는 ‘지식’임을 알게 되었다.

 

  ‘설탕’을 은 폐해주는 교묘한 장치, 탄수화물 중독증과 칼로리.

 

  서구의 영양학자들은 단순히 탄수화물이라고 분류하는 식품들을 이제 질적으로 구분해 보라고 요구했다. 정제하지 않은 통곡식을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것과 평균적인 미국인 식단의 탄수화물 공급원인 감자와 흰 빵, 정제 곡물, 백설탕을 일률적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주장했다.(112쪽)


  모든 음식에는 칼로리가 있었다. 음식의 질은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칼로리가 중요했다. 맷돌에 간 통곡식빵에 함유된 천연 탄수화물 속의 칼로리와 정제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슈퍼에서 파는 스펀지 빵 속의 칼로리가 동일하게 취급되었다.(128쪽) 

 

  급식소에서 아이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먹는 식단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흰쌀밥’에 보리와 조와 같은 잡곡을 부분적으로 섞어 주식을 만들고 반찬에도 일정정도 감미(甘味)가 섞여 “맛있다!”는 탄식을 뱉게 하고, 성장기 청소년들에겐‘ 쾌락 발전소’라고 할만한 매점에서 판매하는 품목들을 살펴보면 과자 종류와 빙과류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감미가 섞여 있다. 질적으로 탄수화물을 구분하다보면 정제된 밀가루나 백설탕은 명백하게 단당류 내지는 이당류의 제품들로서 감히 탄수화물이라는 영양분으로 분류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다이어트를 추종하는 아이들이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밥’이지 결코 반찬 안에 있는 ‘설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의 체계에는 탄수화물 중독증 또는 칼로리가 있을 뿐, 설탕은 없다. 단맛만을 환호하며 입맛을 기꺼이 ‘리모델링’해버리고 ‘건강한 맛’의 맥락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는 설탕을‘ 순수’,‘ 천연’이라는 말로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다.


  단맛이 만들어낸 그림자


  설탕을 만들기 위해 노예를 부려야 하고 설탕을 섭취하면서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병증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을 가질 수 있다면 설탕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슈거 블루스>는“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고 만들어진 적이 없는 설탕, 노예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모름지기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불행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죽음을 먹고 자라는 설탕을 끊고 즐거움을 거부”하라는 프랑스 철학자 C.A. 엘브티우스의 격앙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들 삶은 찐득찐득한 설탕의 늪에 너무나 깊이 빠져들었다. 정결하게 생활을 하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하더라도‘ 일상적 삶’을 위해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만나 대화하고 식사를 한다면‘ 설탕버무리’를 먹지 않고서 는 관계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

 

  건강한 밥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맛의 유혹을 거부하며 아이스크림과 생크림, 빵과 사탕, 떡과 각종 음료며 가공우유, 인스턴트 커피를 단호히 거절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도 설탕이 담뿍 들어간 떡과 향기가 더 맛있는 인스턴트 커피가 한 잔 있다. 특히나 피곤할 때는 이렇게 단맛에 이끌린다. 슈거 블루스 초기 증상이다. 

 

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6호에 실린 글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안예모 사이트맵

안예모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