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임산부’에게 시험용 백신의 ‘조산’ 위험성 은폐
입력 : 2023-11-16 08:31
수정 : 2023-11-17 13:50
임상시험 동의서에 ‘태아는 위험없다’ 명시 
“조산 부작용 위험 공지 않은 것은 윤리적으로 큰 문제”

화이자(Pfizer)가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이하 RSV) 백신의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 조산(早産‧조기분만)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백신은 아브리스보(Abrysvo)라는 이름으로 최근 미국 등에서 출시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임산부가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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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23시30분(GMT 기준) 공개된 영국의학저널(The BMJ)의 화이자(Pfizer) 관련 기사 모습. BMJ 2023;383:p2620

15일(현지시각) 영국의학저널(The BMJ)은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아브리스보(Abrysvo)’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조산 위험성을 특별관심부작용(Adverse event of special interest)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상3상 참가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BMJ 측은 “화이자는 아브리스보와 성분과 작용방식이 유사한 RSV 백신을 개발하던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하 GSK)가 조산 위험성이 발현돼 임산부 대상의 임상3상을 중단한 후에도 참가자들에게 이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며 “화이자가 임산부들에게 받은 임상시험 동의서에 ‘태아는 백신 등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BMJ는 1840년 창간된 의학저널로 영국의학협회(BMA)에서 발간하고 있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백신, 조산 위험성 발견

RSV는 가벼운 감기 증상을 유발하는 흔한 바이러스다. 그러나 아직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으며, 생후 3개월째가 감염 후 입원 위험이 가장 높다. 어린 영아가 RSV에 감염될 경우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에 따라 임산부에게 접종해 태어날 아기가 RSV로부터 보호받도록 하는 모태 백신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화이자와 GSK가 융합 전(Pre) RSV-F 단백질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하는 백신을 각각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28일 상황이 변했다. GSK가 조산과 신생아 사망의 위험성을 발견한 후 임상 3상을 중단한 것. GSK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조산 부작용은 백신 그룹에서 6.81%(95% 신뢰구간 5.99%~7.69%), 위약 그룹에서 4.95%(3.97%~6.07%) 발생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신생아 사망률은 백신 그룹에서 0.37%(0.20%~0.64%), 위약 그룹에서 0.17%(0.04%~0.50%)였다.

화이자 역시 조산 부작용을 특별관심부작용으로 인지한 후 연구하고 있었다. 최근 공개된 아브리스보 임상3상 데이터에서 조산 부작용은 백신 그룹에서 5.7%(4.9%~6.5%), 위약 그룹에서 4.7%(4.1%~5.5%)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수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라 할 수 없으며, 실제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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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의 아브리스보(Abrysvo) 백신 제품 모습. FDA·Pfizer

문제는 ‘공지 여부’…‘태아 위험없다’는 안내도 지적

논란이 된 점은 GSK의 임상3상 중단 이후, 화이자가 조산 부작용의 위험성을 참가자(임산부)들에게 올바르게 공지하고 알렸는지 여부다.

BMJ는 화이자의 임상시험이 진행된 18개국의 보건당국과 80명 이상의 임상시험 관계자에게 연락했으나, 어느 누구도 화이자가 위험성을 공유했다고 답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찰스 웨이저(Charles Weijer)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생명윤리학 교수는 “화이자가 임산부들에게 GSK의 결과를 알렸다면,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여성들은 접종 여부를 고민할 수 있었고 이미 접종한 여성들은 추가적인 의학적 조언과 추적관찰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안전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BMJ 측은 미국‧캐나다‧네덜란드‧핀란드‧뉴질랜드에서 임상3상 참가자들에게 제공된 화이자의 임상시험 동의서에 ‘연구 백신과 관련된 위험은 임산부에게만 영향을 미치며, 태어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점이 논란을 부추겼다는 입장이다.

로즈 베르나베(Rose Bernabe)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Universitetet i Oslo) 의학연구윤리학 교수는 “이 임상시험 동의서는 무책임하며 사실상 잘못됐다”며 “태아나 신생아가 어떠한 위험이나 불편함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안전감을 주며 유효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비판했다.

한국화이자제약 “답변할 내용 없어”

화이자의 아브리스보(Abrysvo) 백신 임상3상은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 3월19일에 승인돼 백신 접종일 기준 임신 24~36주에 해당하는 산모 100명을 대상으로 2021년 6월부터 전국 4개 실시기관에서 진행됐다. 다만 실제로 모집돼 임상시험에 참가한 임산부들은 100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화이자제약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내에서 진행된 백신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조산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임태균 기자 i21@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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